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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1.03 황해(2010)

황해(2010)

언제부턴가 선이 굵은 영화가 소스라치게 좋다. 워낙 불감증 시대에 살다보니 극장에서 전율을 느낄지라도 그 날 잠자리에 누울 때까지 유지하기가 힘든데, 황해는 보고난 후 지금까지도 그 지독한 - 영화속 더러운 여인숙 방들과 탁하고 뿌연 바닷물의 무거운 질감이, 땟국물과 시커먼 핏물의 찝찔함이 목구멍에 느껴지는 듯 하다. 우리 말로 된 날 것의 언어로 만들어진 대사라 그런지 이제껏 봐왔던 그 어떤 영화보다 거칠어 보였다. 외국에서 수없는 느와르, 갱스터 무비가 만들어지지만 콧방귀라도 길게 내뿜는 듯 '황해'의 무식함(단순한 잔임함과 폭력성만을 이야기 하는 건 아니다)에는 범접하지 못한다고 보는 내내 생각했다. 

 

 영화 초반은 6개월간의 중국에서의 경험 때문에 연길의 거리, 시장, 사람들과 택시등의 모습이 남다르게 다가왔고, 여기가 영화 속 유일한 공간이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홍진 감독은 직접 중국에 건너가 조선족들 인터뷰를 하며 어떤 연민을 느낀 듯 고스란히 영화에 그 시각이 반영 되었지만 태어나서 처음 중국어를 배우는 날 우리나라에서 중국통으로 불리는 교수님의 '조선족과의 비즈니스는 절대 불가'라는 말씀과 법인에서 같이 일하는 조선족 과장이 자신들은 중국인이지 한번도 한국인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는 말이 아직도 가슴 깊이 남아 사랑해 마지않는 배우 하정우에 조선족 캐릭터를 대입시키기는 쉽지 않았다.

 

 엉뚱하게도 2장에서는 우리 영화 중 가장 잘 나온 에스피오나지-잠입물 영화라는 생각도 들었다. 구남이 갖은 고생을 하며 강남구 논현동에 도착해서 김승현 살해 계획을 짜는 부분은 스필버그의 '뮌헨'이 예상과는 달리 깔끔한 스파이물을 보여준 것 처럼 나홍진 영화에서는 전혀 기대치 않았던 종류의 서스펜스라 신기할 정도였다. 

 

 모든 연결고리가 풀어 헤쳐지는 4장은 한국영화도 자막 넣고 보고싶은 내게는 스크린만 보며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려웠고 영화 감상 후 웹상에 누군가가 그려넣은 인물관계도를 통해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도 러닝타임 때문에 잘려나간 씬들이 조금 있지 않겠나 싶은데, 막상 감독은 DC판은 없다고한다. 이러한 부분과 개연성 부족으로 영화를 혹평하는 경우도 있는데 개연성도 결국은 그 사람 자신의 견해나 해석일 뿐, 픽션이 오픈텍스트라 매력있지 그게 아니라면 다큐를 보면 된다. 

 

 100억을 들였으나 무지한 핸드헬드 기법으로 어쩔 수 없이 싼티나는 장면들에 대해 말들이 좀 있는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헐리웃에서 가장 앞서나간 카체이스/크래시 씬인 자동차가 통째로 건물에 쳐박히거나, 고속도로에서의 자동차 빽플립 등 보다 더 앞서나간 색깔이었다 생각한다. 왜? 사람냄새 나니까. 정말 생명을 포기한 자동차 운전/싸움은 저렇게 나오는 것이며, 카메라를 손으로 쥐지 않고도 뭔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찍힌 장면은 수없이 많다.(그런 장면 보다는 훨씬 알아보기 쉬웠다.) 어떤 사람은 100억이나 썼으면서 차 내부에서의 충돌씬은 블랙박스를 쓴 것 처럼 깍두기 나타날 정도의 저질 화면이라는데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간 건지 화질조사를 하러 간 건지 모르겠다.

 

 영화에 평을 붙이는 거야 자유고 나로서는 이런 무지막지하게 거친 숨소리와 핏자국을 극장에서 보게 해 줄 수 있게 해준 것 만으로도 만족. 어쨌든 이 영화도 외국의 유수한 평론지에는 결국 '올해의 외국어영화 리스트' 상위에 이름을 올리게 될 것이다. 흔하지 않는 영화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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