音樂記

0. 어릴 때 부터 아버지가 사놓으신 LP를 집에서 틀어대다가(당시 최고의 페이보릿은 생상의 '동물 사육제' 였음) 국딩 5학년 때 A-ha의 'take on me' 비디오클립을 보고 뿅가서 황홀해 할 찰나에 사촌누나가 선물로 A-ha의 1집 LP를 사주더군요. 아-하! 나도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아버지처럼 사서 들으면 되겠구나 싶어서 한 두장씩 LP를 구입하기 시작합니다. 처음엔 American top 40기반의 곡들과 당시 한국에서 유행하던 pop 음악을 들었습니다.

1. 저 국민학교 6학년 때가 헤비메탈뮤직의 황금기 86년 입니다. 당시 빌보드 챠트는 거의 메탈밴드의 음악으로 도배가 되었습니다. 제일 대중적이던 Bon Jovi의 'slippery when wet'앨범을 성음 테잎으로 사서 처음 들었을 때 충격적이었습니다. 확실한 비트와 묵직한 기타리프 그리고 터질듯한 보컬, 드디어 rock 음악에 귀를 적시게 된 것 입니다. 이후 용돈만 생기면 주로 헤비메탈 LP를 사댔습니다. 금지곡을 듣기 위해 세운상가를 찾아 무서운 포르노 테잎 강매 아저씨들이 있는 루트를 피해 해적판 가게에 당도 소위 빽판이라는 것 까지 사모으게 되었습니다. 부모님 눈을 피해서 겨울이면 두터운 점퍼안에 LP를 숨겨 들어오는 짓도 많이 했었죠. 그렇게 해서 유럽의 몇몇 아방가르드 아트록을 제외한 rock 음악 전반에 취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고등학생 때 터진 얼터너티브/그런지의 물결은 제 2의 충격파 였던 것 같습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Nirvana 의 'nevermind' 앨범을 학교 도서관에서 처음 듣고 3명의 인원으로 만들어진 사운드에 무척 매료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2. 대학에 가게되면서 드디어 꿈 꾸던 기타를 배워보고자 싸구려 일렉기타와 앰프를 구입하고 학원을 알아봤습니다. 당시 Zero-G에서 기타를 맡았던 송재성씨가 성신여대 근처에 학원을 하나 차렸는데 거기서 2달 정도 기초를 배웠습니다. 송재성씨가 자기 연습실에서 MR에 맞춰 익스트림의 곡을 똑같이 연주할 때 정말 황홀했습니다. 학원 2달 이후에는 국내에 발간된 TAB 악보 책으로 계속 독학을 하고 카피연습을 했습니다. 음악적 취향은 이제 다양하게 변모하여 좋다는 건 다 듣게 되고 특히 군에 가기 직전엔 재즈에도 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크로스오버의 물결을 타고 다채로운 색깔의 음악의 물결에 흠뻑 빠져 지내다가 당시 홍대의 드럭을 중심으로 인디밴드가 성행, 저도 고등학교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하여 드럭진출을 목표로 연습을 시작....하나 둘 친구들이 군에 가는 바람에 다시 한번 방구석 기타쟁이로 전락했습니다. 그리고 1년의 짧은 연애를 마치고 군에 입대했습니다.

3. 제대하고 나니 친구들이 다시 모였습니다. 이번엔 제대로 친구 집 지하실에 둥지를 틀고 Pearl Jam 의 커버를 주 구성으로 해서 홍대 클럽을 목표로 연습했습니다. 원래 좋아하던 GN'R의 몇 곡과 자작곡 2-3곡 정도를 연습해서 홍대의 프리버드에 6개월 정도 나갔습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당시 기타톤을 잘 못 뽑아낸게 아직도 아쉽습니다. 그래도 가장 기타 실력이 발전한 시기가 그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4. 99~00년 정도 컴퓨터에 빠져있던 시기에 친구의 소개로 ACID라는 looping 위주의 시퀀서 프로그램을 소개받습니다. 지금은 일반 PC사운드 카드를 이용하여 멀티트랙 레코딩을 할 수 있다는 것에 크게 흥분했던 것 같습니다. 원래는 이전부터 Tascam의 아날로그식 4채널 멀티트랙 레코더라도 살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컴퓨터 하드웨어의 발달로 집에서도 간단한 멀티레코딩은 가능함에 무척 신기하고 놀랬던 기억이 나네요. 간단한 드럼샘플 wave 파일을 구하고 적당한 크기로 잘라 템포에 맞춰 먼저 드럼 트랙을 기본으로 하여 베이스 녹음, 기타 녹음, 보컬 녹음 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앰프+노래방 마이킹으로 직접 녹음한 오디오 트랙들은 사운드 포지를 이용하여 적당히 손질해 주었습니다. 대여섯곡 정도를 작업했는데 지금은 모두 어디갔는지 모르겠습니다.

5. PC 하드웨어가 발달함에 따라 점점 장비와 소프트웨어도 향상되었습니다. 기타 이펙터로는 POD 2.0을 구입했고 Egosys의 PCI 사운드카드인 waveterminal 192L 과 midi 입출력이 가능한 케이블을 구입하여 본격적으로 녹음해보고자 했습니다. 이 때 시퀀서로는 cubase 를 사용해보려 했고, 각종 VSTi(가상 악기)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가상악기를 제어하기 위해 야마하의 마스터 키보드(CBX-K3)도 구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는 가상악기를 이용해 제법 풍성한 조합을 꾸며봤지만(올드스쿨 올갠 사운드를 넣어봄) ASIO 드라이버의 레이턴시 때문에 좌절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저의 열성 부족 탓이지만 지금까지도 회사에 많은 시간을 빼앗기는 데에다 언제나 머리속으로 의욕만 앞서고 실행에 못 옮기는 게으름때문에 큰 발전이 없는 것 같습니다. 2년전에 최종적으로 구입한 오디오 인터페이스인 에디롤의 FA-66을 통해 이미 현 수준의 컴퓨터는 홈레코딩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전까지는 몇몇 칩셋과 OS상의 문제 때문에 cubase 등의 불협화음이 문제가 되었지만 지금의 듀얼코어 이상의 사양 및 오디오 인터페이스 기기 그리고 최종적으로 각종 소프트웨어의 발달(시퀀서 및 가상악기)로 집에서도 어느정도 수준의 레코딩은 가능한 것 같습니다.

6. 현재로서는 있는 장비를 활용하여 다시 곡 작업을 해 볼 생각에 있습니다. 우선 기타는 guitar rig 이라는 플러그인을 사용해서 톤을 잡고 아쉽게도 베이스 기타가 없는 관계로 나머지는 모두 가상악기에 의존해야 될 것 같습니다. 문제는 시퀀서를 뭘로 정하느냐인데 얼마전에 써본 Ableton 의 Live 도 나름 매력적인 시퀀서인 것 같습니다. 일단은 시퀀서의 대명사 cubase로 작업을 하겠지만 저는 실제 녹음되는 audio track은 기타와 보컬 뿐이므로 가상악기의 의존도가 많은데 플러그인이 여러개 걸려도 현재의 PC사양에서 안정적으로 작업이 가능한 시퀀서가 제일일 것 같습니다.

7. 하고싶은 음악 스타일은 참 간사하게도 좋아하는 곡이 생길 때마다 바뀌는 것 같습니다. 근본적으로는 Bruce Springsteen이나 일본의 오자키 유카타 같은 뮤지션이 목표이긴 하지만 방구석에서 곡 만드는 것 만으로는 그런 정력적인 음악이 나올리가 없겠죠. 지금의 1차적 고민은 각종 tool을 잘 다루는 것 인데 아무리 조언을 구해도 직접 곡 작업을 하며 체득하는 게 제일 빠른 것 같습니다. 해보지도 않고 물어보기만 할 수는 없는 일이죠. 그리고 각종 플러그인이나 가상악기의 조합도 고려하고 guitar rig을 사용한 기타톤의 완성도 생각해 볼 일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시간을 내어 작업을 진행하게 되면 종종 글도 올리고 자문도 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