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듣고 읽고'에 해당되는 글 59건

  1. 2011.01.03 황해(2010)
  2. 2010.06.24 Cassandra's Dream (2007)
  3. 2010.04.05 로열 테넨바움(Royal Tennenbaums 2001)
  4. 2010.01.27 오늘의 지름보고 1
  5. 2010.01.20 The Ting Tings
  6. 2009.12.25 Merry Christmas Baby
  7. 2009.01.19 드럭 스토리
  8. 2008.12.13 제주여행 문서
  9. 2008.11.22 전설의 MSX 게임 몽대륙 실사판
  10. 2008.11.22 카라얀 필청 포인트 1

황해(2010)

언제부턴가 선이 굵은 영화가 소스라치게 좋다. 워낙 불감증 시대에 살다보니 극장에서 전율을 느낄지라도 그 날 잠자리에 누울 때까지 유지하기가 힘든데, 황해는 보고난 후 지금까지도 그 지독한 - 영화속 더러운 여인숙 방들과 탁하고 뿌연 바닷물의 무거운 질감이, 땟국물과 시커먼 핏물의 찝찔함이 목구멍에 느껴지는 듯 하다. 우리 말로 된 날 것의 언어로 만들어진 대사라 그런지 이제껏 봐왔던 그 어떤 영화보다 거칠어 보였다. 외국에서 수없는 느와르, 갱스터 무비가 만들어지지만 콧방귀라도 길게 내뿜는 듯 '황해'의 무식함(단순한 잔임함과 폭력성만을 이야기 하는 건 아니다)에는 범접하지 못한다고 보는 내내 생각했다. 

 

 영화 초반은 6개월간의 중국에서의 경험 때문에 연길의 거리, 시장, 사람들과 택시등의 모습이 남다르게 다가왔고, 여기가 영화 속 유일한 공간이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홍진 감독은 직접 중국에 건너가 조선족들 인터뷰를 하며 어떤 연민을 느낀 듯 고스란히 영화에 그 시각이 반영 되었지만 태어나서 처음 중국어를 배우는 날 우리나라에서 중국통으로 불리는 교수님의 '조선족과의 비즈니스는 절대 불가'라는 말씀과 법인에서 같이 일하는 조선족 과장이 자신들은 중국인이지 한번도 한국인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는 말이 아직도 가슴 깊이 남아 사랑해 마지않는 배우 하정우에 조선족 캐릭터를 대입시키기는 쉽지 않았다.

 

 엉뚱하게도 2장에서는 우리 영화 중 가장 잘 나온 에스피오나지-잠입물 영화라는 생각도 들었다. 구남이 갖은 고생을 하며 강남구 논현동에 도착해서 김승현 살해 계획을 짜는 부분은 스필버그의 '뮌헨'이 예상과는 달리 깔끔한 스파이물을 보여준 것 처럼 나홍진 영화에서는 전혀 기대치 않았던 종류의 서스펜스라 신기할 정도였다. 

 

 모든 연결고리가 풀어 헤쳐지는 4장은 한국영화도 자막 넣고 보고싶은 내게는 스크린만 보며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려웠고 영화 감상 후 웹상에 누군가가 그려넣은 인물관계도를 통해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도 러닝타임 때문에 잘려나간 씬들이 조금 있지 않겠나 싶은데, 막상 감독은 DC판은 없다고한다. 이러한 부분과 개연성 부족으로 영화를 혹평하는 경우도 있는데 개연성도 결국은 그 사람 자신의 견해나 해석일 뿐, 픽션이 오픈텍스트라 매력있지 그게 아니라면 다큐를 보면 된다. 

 

 100억을 들였으나 무지한 핸드헬드 기법으로 어쩔 수 없이 싼티나는 장면들에 대해 말들이 좀 있는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헐리웃에서 가장 앞서나간 카체이스/크래시 씬인 자동차가 통째로 건물에 쳐박히거나, 고속도로에서의 자동차 빽플립 등 보다 더 앞서나간 색깔이었다 생각한다. 왜? 사람냄새 나니까. 정말 생명을 포기한 자동차 운전/싸움은 저렇게 나오는 것이며, 카메라를 손으로 쥐지 않고도 뭔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찍힌 장면은 수없이 많다.(그런 장면 보다는 훨씬 알아보기 쉬웠다.) 어떤 사람은 100억이나 썼으면서 차 내부에서의 충돌씬은 블랙박스를 쓴 것 처럼 깍두기 나타날 정도의 저질 화면이라는데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간 건지 화질조사를 하러 간 건지 모르겠다.

 

 영화에 평을 붙이는 거야 자유고 나로서는 이런 무지막지하게 거친 숨소리와 핏자국을 극장에서 보게 해 줄 수 있게 해준 것 만으로도 만족. 어쨌든 이 영화도 외국의 유수한 평론지에는 결국 '올해의 외국어영화 리스트' 상위에 이름을 올리게 될 것이다. 흔하지 않는 영화이므로.

Cassandra's Dream (2007)


Cassandra's Dream

<프랑스판 포스터를 골랐을 뿐 프랑스 영화가 아닙니다. ^^>



 'Match Point(2005)'와 이 영화 사이에 만든 'Scoop(2006)'을 보지 못 해 속단하긴 이르지만, 나이 지긋한 뉴욕 토박이 감독님은 고전적인 스릴러에 마음을 뺏겨 버린 것 같다. 하긴 그 두 작품을 감상하고 나니 지금 시대에 가장 적절히 히치콕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만한 사람이 우디 앨런 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지금처럼 모든게 심심해져 그 주제가 모호할 수록 환영(?)받는 시대에 복고적 이야기가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어떤 영화의 리메이크가 아닌가 찾아보게끔 만들기도 했다.

 콜린패럴은 본 중에 가장 털털하고 수수한 캐릭터를 맡아서인지 출연 배우 중에는 그의 연기 보는 재미가 제일 좋았다. 이완은 계속해서 어처구니 없는 허풍선이 투자를 줄창 읊어대서인지 트레인스포팅 2 같은 느낌이 들기도... ^^

 결론적으로는 참 재미있었지만, 이 소심한 어르신의 예전 영화들 - 화려한 손님들 우루루 출연한 심야 토크쇼 같은,  그 끊임없이 피식거리게 만드는 영화들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로열 테넨바움(Royal Tennenbaums 2001)

2010/04/04 감상


성인용 동화책 - 화려한 캐스팅 다음으로 눈에 띄는 건 화면이 굉장히 예쁘다는 거였다.
스토리 전개에서와 똑같이 이 영화의 미술은 최대한 '책과 유사한 느낌의 화면' 이었을 것 이다.(역시, 소설보다는 동화에 가까운)

인도인 하인에 테니스 스타 캐릭터가 나와서 그런지 배경이 자꾸 영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된다.

절대지존의 노장과 매력적인 젊은 배우들 + 만화적인 캐릭터 성이 섞여 그 포스터 만으로도 영화에 화악 끌린다.
진 핵크먼은 여지껏 연기한 심술맨 이미지를 모두 모은 듯 하고, 오웬 윌슨의 정신나간 스타일과 루크 윌슨의 젠틀가이 다운 모습 그대로며,
벤 스틸러와 빌 머레이와 조금 괴짜같은 천재 이미지도 그대로 다만 여성 캐릭터는 이제까지와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음악이 툭 튀어나오지는 않지만 인상적인 - 마치 동화책 읽을 때 틀어놓은 - 느낌을 주며 특별한 구성없이도 지루하지가 않다.

미술과 화면구성이 독특해서는 뭔가를 상징하지 않나 자꾸 생각하게 되는데 아무래도 그런건 없는 것 같다 ^^

오늘의 지름보고

너어어어-무 배불러서 행복하다!!



<고다르 얼티밋 컬렉션>


<에릭 로메르 컬렉션>


<에릭 로메르 4계절 중 봄>

 
<에릭 로메르 4계절 중 여름>

 
<에릭 로메르 4계절 중 가을>

 
<에릭 로메르 4계절 중 겨울>


<에릭 로메르 Six Moral Tales>

The Ting Tings

시고니 위버 보려고 SNL 시청 중,

오늘의 뮤지컬 게스트에 Ting Tings가 나왔다.

드러머+보컬

좀 허전하지만 묘한 구석....

조금의 검색과 유튜브에서의 비디오 클립 감상으로 바로 빠져들었다.

지루한 브릿팝에 활력을!




Merry Christmas Baby


블루스 캐롤 원곡

Bruce Springsteen 커버를 커버....

썰렁함은 격무와 모자란 시간 탓으로 핑계를-

(빅밴드가 스몰밴드로 후반부 보컬은 은하계로...)

드럭 스토리

60년대산인 나는 중학교 시절 우리나라에 들어온 통기타 붐에 밥딜런
존바이즈, 존덴버, 한대수, 김민기등의 포크나 컨츄리음악에 빠져 소풍
가면 통기타메고 존 덴버의 Take me home countryroad를 불러 제끼곤
했다.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몇몇 아이들과 팀을 짜서 교회등에서 하는
문학의 밤에 초대되어 여학생들 앞에서 폼 재기도 했었다. 대학에 가서
는 그당시 대학 가요제 열풍으로 불어 닥친 그룹사운드 바람에 일렉트릭
기타를 잡아 보기도 하였으나 레드제플린이나 딥퍼플을 도저히 감당할 재
능이 없어서 때려 치우고 연극 반에 들어가 연극에 미쳐 버렸다. 겨우겨우
대학을 졸업 하고 남들이 하는 대로 취직을 했다. 토목과를 나와 건설 회사
에 들어 갔다. 제대로 적응 하기가 힘들어 이회사 저 회사를 옮겨 다니다
때려 치우고 엉터리같은 사업도 해 보다가 망하고 다시 취직하고 하다가
결혼도 하게 되었다. 내가 할일은 이런게 아닌데 아닌데......하면서 게
기다 보니 대학을 졸업한지 7년이나 되었다. 와중에 더욱 나의 딴따라 끼를
부축인건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만든 박모감독과 동서지간이 되어 한집
에서 사는 것이었다. 영화감독,배우,작가들이 집에 드나들며 술을 퍼댈때
꼽사리껴서 먹다가 날밤새고 눈알이 벌겋게 충혈된 상태로 회사 출근 하는
일이 잦다 보니 회사 웃대가리 한테 노상 깨지고 아랫놈들 한테 배울것이
하나도 없는 선배로 무시 당했다. 몸도 마음도 다 망가져 가고 있었다.
어느날 용기를 내어서 마누라에게 선언했다. "나 회사 때려 치울래." 베개
로 죽사발라게 터지고 난뒤 회사를 때려 치울 수가 있었다. 아무계획 없이
회사를 때려 치웠기 때문에 빈둥빈둥 놀며 무엇을 하면 재미도 있으면서 돈
을 벌 수 있을까 궁리를 했다. 영화판을 기웃 거리며 할일을 찾아 보았으나
나이가 좀 들어 마당히 할일이 없었다. 할일이 없으면 까페나 차릴 생각을
한다고 누가 그러더니 나도 결국 그렇게 되고 말았다. 교사인 마누라와 그
래도 어쨌던 맞벌이를 몇년 한덕에 신도시에 아파트를 분양받아 살고 있었다.
마누라를 이리 꼬시고 저리 꼬시고 해서 집을 담보로 은행 융자를 받아 사업
자금을 만들었다. 무조건 까페는 홍대 앞에 차리면 잘 된다는 귀여운 사기꾼
뀀에 빠져 지금의 드럭 자리에 94년 1월 "뮤직 클럽" 이라는 간판을 걸게 된
다. 내가 즐겨 듣던 포크 음악과 영화 음악등을 틀며 장사를 시작 했다.
집에서 같이 술 먹던 영화쟁이들과 학교 후배 녀석들이 떼거지로 몰려와 싹
쓸고 가는것 외에는 손님이라곤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술꾼이 술 장
사를 하고 있으니 장사를 하는 건지, 30평짜리 개인 전용 술빠를 차려 놓은
건지 구분이 안 갔다. 아무튼 술이 취해 있을때는 분위기 좋은 까페에서
좋은 음악을 들으며 돈 안내고 마음대로 술을 먹는것이 즐거웠다. 사정이 이
렇게 몇 개월이 지나다 보니 빚 더미에 올라 안게 되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
다 싶어 뭔가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 했다. 단골 내지는
죽돌이 죽순이였던 홍대 영화반 아이들과 머리를 짜내기 시작했다. 밀린 임
대료 독촉과 은행빛에 시달렸던 나는 빨리 돈을 벌어야 했다. 그 당시 유행
하던 레게빠를 구성했다. 아이들과 잘 나가던 몇몇 레게빠를 염탐하러 다녔
다. '그래, 바로 이거야! 모두가 결론을 내리고 인테리어 작업에 들어갔다.
레게 음악을 틀어 놓고 페인트 칠을 하고 테이블을 지금의 철제 테이블로 바
꿨다. 한 3~4일 신나게 작업 했다. 그날도 작업을 하고 있는데 아이들의 동
료 한 아이가 불쑥 나타나서 "레게 조금 있으면 끝나요. 펑크 빠를 해요."
하는 것이었다. "펑크? 펑크가 뭐냐? 열심히 인테리어 하던 한 아이도 덩달
아 펑크빠를 하라는 것이었다. '펑크? 펑크라.......펑크라......'
어디선가 들어 본 기억이 나는것 같았다.
대학 다니던 시절 지금의 삔족같은 아이들이 귀밑으로는 바리깡으로 밀고
위로는 사자 대가리같은 머리를 하고 펑크파머 했다고 거리를 활보 하던 기
억이 났다. "잠깐 기다려 보세요 " 하더니 음반을 2장같고 왔는데 1장은
갓난아기가 물속에서 헤엄치며 달러를 잡으려고 하는 것이고 또 한장은 한
아이가 기타를 내리 치며 다리를 좍 벌리고 있는 것이었다. 갓난아기가 그
려 져 있는 음반을 먼져 들어 보았다. "야 이거 메탈 아니냐? " 포크나 컨
츄리 계열의 음악에 빠져 있던 나는 메탈의 금속성같은 괴음들이 썩 가슴
에 와 닫고 있지를 않았었다. "아니예요 끝까지 들어 보세요." 해서 듣다보
니까 "어라?" 메탈 싸운드 비슷하면서도 쇠소리가 아니라 사람소리로 들리는
것 이었다. 다음 음반도 계속 들었다. 꿍짝꿍짝 하는것이 뽕짝같기도 하고
신기했다.
다음날 서점에 들려 음악 서적을 다 뒤져 펑크에 대한 자료를 구해서 읽어
보았다. 가슴이 콩당콩당 뛰었다. 내가 레드 제플린 때문에 일렉트릭 기타를
포기했던 그 시절에 이런게 세상을 휩쓸고 있었다니 놀라울 다름이었다.
생각해보니 군부 독재 시절 이 무정부 주의자들의 반란의 유입을 철저하게
원천 봉쇄시켰던 것이었다. 사자 대가리같은 펑크 파머도 일본을거쳐 어설
픈 스타일로 들어온것 같았다. 그 당시 잘 나가던 음악 잡지에서 섹스피스
톨즈라는 단어를 본 것 같았는데 삼류 정도로만 알고 지나쳤던 기억이 되
살아 나는 것 이었다. 나같은 사회 적응 부적격자에게도 기댈수 있는 어떤
정신이 있다는 것이 무척 반가웠다.
당장 돈을 벌어야 하는 현실과 펑크의 마력에 갈등 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 기타 뽀개는 얘를 간판으로 걸어 버리자" 하고 아이들에게 말하게
되었다.
"이왕 막 가는거 제목도 확 가는 거로 하자."
해서 94년 7월 DRUG 의 간판이 올라 가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94년 7월(정확한 날짜를 기억하지 못함) 드럭의 문을 열었다.
인테리어를 도와준 홍대
영화반 아이들이 추천하는 음반 몇장을 구입하고 그들이 갖고온 음반
몇장을 구비하여 음악을 틀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펑크 비스무리한 음반은 NEVERMIND,LONDON CALLING,
NEVERMIND BLOCK 3장 뿐이었다.
며칠이 지나자 인테리어 작업을 하면서 들떴던 분위기는 싹 살아지고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테이블에는 역시 아는 얼굴 몇몇 만이 앉아 꽁술만 축 내고 있을 뿐이었다.
'찌라시라도 만들어 뿌리면 좀 나아 질까?'
앞면에 LONDON CALLING 사진을 넣고 PUNK LOOK. DRUG ALTERNATIVE BAR 라고
쓰고 뒷면에는 책에서 펑크에 관한 내용들을 발췌해서 이리저리 조합을 해
그럴듯한 글을 실었다. 죽돌이들과 함께 홍대 신촌 등지를 돌아다니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나눠 주기 시작했다.
염치 불구하고 몇몇 레코드 숍에도 비치 시켰다. 그러기를 한 일주일 했을까?
가뭄에 콩 나듯이 새로운 얼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국내에 펑크 음반들이 보급이 안 되었을 때라 아무거나 우리가
틀어주면 이런게 펑크 록 인가 보다. 하는 눈치였다.
시간이 지나며 펑크 록을 좀 들어본 손님들이 오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도 이런 클럽이 있었느냐듯이 신기한 표정을 짓고 들어왔다가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는
여기 펑크바 맞아요?하며 한심하다는 표정과 함께 가 버리는 것이었다.
"아저씨, 펑크바 하세요!" 하던 홍대 아이들도 슬슬 안 보이기 시작 했다.
결국 유학 준비 중에 내일을 조금 봐주던 처남과 나 둘만이 남게 되었다.
자신이 없었다. " 뭘 제대로 알아야 면장을 해 먹지 " 남의 속도 모르는체
또 후배 놈들과 영화쟁이들이 몰려와 "분위기 죽이는데......."하면서
술만 축 내고 있었다. 그리고는 " 펑크고 빵꾸고 때려 치우고 우리가 손님
많이 끌고 올 테니까 단란주점이나 하세요?"하는 것이었다.생각하기 복잡해
술이나 마셔댔다.
그러던 어느날 일군의 무리가 들이 닥친다.
십여장의 음반을 카운터에다 올려 놓더니,체크해논대로 틀어 달라는 것이었다.
이게 다 뭐냐고 물어 보니까 그게 다 펑크 음반이라 했다.
요구 하는 대로 음반을 틀기 시작 했다. 꽝꽝 때리는 음악이 흘러 나오자,
그 일군의 무리들은 자기들 끼리 막 몸으로 부딪히며 난리 부루스를 치는 것
이었다.드럭의문을 열면서 원래 막혀 있던 지금의 무대 공간의 반을 뚤어서
꼭 귀신이 나올것 같은 공간을 만들어 놓았었다.
"저 안으로 가자."하면 우르르 그안으로 뛰어들어 갔다가 다시 밖으로 나왔다가
막 포개고 뭉개고 다니면서 정신을 홀딱 빼 놓는 것 이었다. 두 세시간을 그렇게
놀더니만 그중에 한명이 내게 다가와서는 자기들은 **를 사랑하는 모임
(이 모임은 현존하고 있음)이라고 소개하며 여기
" 분위기는 죽이는데...... 음악이 없어요. 음반을 들고 와서 종종 놀겠습니다."
하고는 훌쩍 떠나는 것이었다.
'한국에도 책에서 봤던 펑크족들이 존재하고 있었단 말인가?'
처남과 나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며칠후 그들이 또왔다. 이번엔 인원도 더 많아졌고 음반도 더 많이 가지고 왔다.
또 한차례 광란의 춤 파티가 벌어졌다. 춤추는 형태도 다양했다.
한참 놀고 갈려고 하는 그들을 붙잡았다.
" 내가 펑크 음악을 잘 몰라서 그러는데 혹시 여기서 음악을 틀어 줄 만한
사람이 없겠느냐?"고 물어 보았다.
며칠뒤 한 친구가 왔다. 이름은 황기연이다.
이제 어느정도 틀이 갖춰져 갔다. 기연이와 친구들의 도움으로 PUNK, ALTERNATIVE,
MODENROCK,HARDCORE 계열의 음반을 수집하기 시작했으며
영국출장을 가는 박모 감독한테 부탁을 해서 그당시 ROLLINGSTONE,SPIN지에서나
볼수 있었던 70년대 펑크 명반들을 수십장 구했다.그리고 핫뮤직에다 광고를 냈다.
PUNK & ALTERNATIVE BAR DRUG
펑크나 얼터너티브에 관심있는 메니아들이 하나 둘씩 찾아 오기 시작했다.
핫 뮤직 기자들도 찾아와 기사를 써서 드럭을 소개 했다.
여전히 빚은 날로 불어 갔지만 뭔가 되가는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현재 한 클럽에 사장이된 이모군을 통하여 드럭분위기에 맞는 뮤직비디오 클립도
다량 확보하여 지금은 다 박살이난 33" 중고TV와7"짜리 소형TV 5대로 틀어댔다.
하루 종일 화면도 보고 음반도
듣고 하다보니 이쪽 계열의 음악을 대충 알게 되었다.
일군의 펑크족(?)들이 정신을 싹 빼 버리고 가끔씩 출몰할 당시 드럭의 운명을
결정짓는 새로운 인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 중에 한 인물인 드럭 모임에 시샵 김인수군의 이야기는 뒤로 하기로 하고
서울대의 두 낙제생 이우성과 조현래가 나타난다.(이우성은 현 코코어 보컬이다.)
이쪽 계열의 음악을 두루 섭렵하였으나 나를 사로 잡았던것은 너바나였다.
어느날 나타난 이 두 낙제생은 완전히 너바나 음악에 중독 되어 있었다.
춤꾼들이 휘젓고 사라지면 이들과 나는 볼륨을 최대한틀어놓고 술과함께 너바나
음악속으로 밤새 빠져 들어갔다.금전 압박과 앞날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렸던 나와
현실적응이 거의 불가능 했던 두낙제생에게 커트코베인의 울부짖음과 술은 우리를
현실로부터 단절시켜주는 유일한 환타지였다.이들은 학교대신 드럭으로 출근 했다.
처남이 유학을 가버린후 나이들은 아저씨가 젊은아이들 술 써빙하는 것이 안스러워
보였는지 자기들이 나서서 하곤했다.마누라와아이가 집에 없는날 이들과함께 집으로
갔다.한 참 술을 먹다가 옛날 생각이 나서 쳐 박아 두었던 통기타를 꺼내서 한곡조
뽑아대자 우성이가 기타를 잡았다. "집에서 혼자 음반 듣고 해 본 건데 엉터리예요."
하고는 너바나 곡들을 불러 대는데 커트코베인이 바로 옆에서 언플러그 공연을 하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커트의 목소리와 흡사했다.
그날 이후 우성이에게 밴드를 만들어 주어서 그 귀신
나올 것같은 공간에서 너바나곡들을 부르게 하면 재미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간간히 오는
손님들 중에서 기타나 드럼을 칠수 있는 사람이 있나 찾기 시작 했다.
그러던중에 황명수(현 코코어 기타)
허남준(코코어 드럼이었으나 탈퇴) 데쓰메탈 밴드를 하던 김정민(현 군제대)을
드럭에서 만나 우성이를
이들에게 소개 시켜 주었다.
너바나에 LITHIUM과 헬멧의 HELP ME를 각자 연습한후 마추어 보기로 하였다.
우성이를 제외한 나머지 셋은 고교 시절 부터 공연 경력이 있는 경험자들이라
긴장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는데 우성이는 긴장을 했는지 소주를 한 병 사 왔다.
HELP ME의 합주가 시작 되었다.
기타, 베이스 드럼 곧잘 맞는것 같았는데 우성이는 긴장한 탓 인지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합주가 끝난후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세명의 눈치가 어디서 저딴얘를 소개시켜 주었냐는 눈치다.
내성적인 우성이는 엄청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는 안될것 같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후
"너바나 것 부터 해보자. "라고 내가 말했다.
'이것도 안 되면 어쩌나......' 나도 무척 긴장이 되었다.
LITHIUM의 전주가 시작 됐다. 우성이가 지긋이 눈을 감았다.
우성이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 했다.
커트의 그것과 똑같다는 생각을 다시 했다.
우성이의 목소리에 불이 붙기 시작 했다. 연주자들도 신이
나는지 동작이 커 지기 시작 했다. '이젠 안심이다. '
합주가 끝난뒤 이구 동성으로 "우리는 너바나
것만 해야 될 것 같아요" 라고 말하는 것 이었다.
나 한 테는 정말 듣기 좋은 소리 였다. 팀 이름은
우선 '드럭 밴드' 라 하기로 하였고 장비는 싸구려로 구입 했다.
드럭에도 쿵쾅거리는 연습 소리가
들리기 시작 했다.
그무렵 드럭의 또 하나의 인물이 등장한다.
임현종(퀘스쳔스 기타 보컬,오방 이란 단어를 드럭에 전파한 장본인)
미국에서 영화 학교를 다니다가
너바나에 중독 되어 국내에 보급 안된 너바나의 각종 CD와 자료들을
한 보따리 들고 국내에서 펑크
밴드를 만들겠다고 귀국한 인물이다.
현종이는 헤어 스타일과 표정까지도 커트를 빼다박듯이 하고 다녔다.
그를 통하여 너바나및 수많은 펑크 밴드들의 자료를 듣고 보게 되었다.
일단 그도 드럭 밴드에
합류하여 기타를 맡게 되었다.
그때가 커트 코베인의 사망 1주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는 95년 3월 이었다.

제주여행 문서

작성해 본 제주여행 문서


전설의 MSX 게임 몽대륙 실사판


카라얀 필청 포인트

* DP Luca 님 조언

1. 베토벤 3번 2악장, 5번 1악장, 7번 2악장("돌이킬수없는"에 나온), 9번 4악장
2. 브람스 3번 3악장
3. 모짜르트 40번 1악장
4. 브룩크너 7번 2악장(불멸의 이순신)

5. 베토벤 에그몬트 서곡(심포니 에디션인데 보너스인지 서곡도 있더라고요...)
6. 하이든 94번 "놀람" 2악장
7. 차이콥스키 6번 "비창" 1악장
8. 멘델스존 4번 "이탈리아" 1악장 등등인데요...

하이든, 모짜르트가 그냥 BGM으로 틀어놔도 좋을 부담없는 쪽에 가깝고
브룩크너가 매우 심오하고 웅장한 (한편으론 내공을 요하는) 쪽입니다...

아래는 해당 에디션 트랙리스트 링크

http://www2.deutschegrammophon.com/cat/product?areaID=webseries&ID=karajan2008&PRODUCT_NR=4778005&objRank=1&USAGE=webseries&SUPPRESS_WORKSLINK=1&SUPPRESS_INFOLINK=1&SUPPRESS_HYPERLINKS=1&EXTERNALSTYLESHEET=../css.htms?areaID=webseries%26ID=karajan2008%26objName=CATALOG_CSS&display_product_head=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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